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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삼박사 칼럼

<서강학보 기고글> 오해와 무관심을 넘어 정합(整合)의 한의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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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와 무관심을 넘어 정합(整合)의 한의학으로



반갑습니다. 저는 서강대학교에서 학기별로 교양과목 “건강과 한의학”,“사상의학(四象醫學)의 이해”을 통해서 여러분을 만나고 있는 한의사(韓醫師) 이병삼입니다.  굳이 저의 직업과 과목을 밝힌 이유는 제가 강의하고 있는 한의학에 대하여 소개하기 위함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교양과정에서 한의학을 접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그것이 제가 한의원을 나와서 강단에 서게 된 큰 이유이기도 하지요! 사회의 모든 분야, 특히 학문이나 의료의 분야에서도 서양이 절대적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는 요즘에 한의학도 고전분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위기가 곧 기회라고 서양의 사상, 과학, 의학도 그것만으로는 완벽할 수 없어 여러 면에서 한계를 드러내 다시금 동양에로의 관심이 고조되어 그나마 앞으로의 전망은 밝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수 천 년에 걸쳐 우리의 삶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한의학에 대하여 지식인을 포함한 일반 대중들의 인식과 관심은 매우 낮아 그 진가가 절하되고 있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필자의 능력 미비와 적은 지면의 한계상 한의학의 진수를 온전히 맛보일 수는 없겠으나 그것은 강의를 통하여 구현하도록 하고 오늘은 한의학을 배워야하는 당위에 대하여 몇 가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과거와 현재는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여 미래를 만듭니다.

사람들의 통념상 새로운 것은 무조건 좋고 세련되며, 옛것은 모두 폐기처분할 대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첨단 과학 분야에서 제시되는 이론들조차도 앞으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공학과 자연과학의 발달에 힘입은 현대의학의 장점은 분명 무시 못 할 정도이지만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과학적이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과학만능주의는 반드시 경계되어야 합니다. 

아주 옛날이나 지금이나 의료의 대상은 사람이며 그 사람이 크게 바뀐 것은 없습니다. 수 천 년 동안 그때그때 당시의 의학이론과 기술로도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였습니다. 구한말의 유학자인 혜강 최한기 선생은 기측체의(氣測體義)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는데 참으로 곱씹을만합니다. “예전에 밝혀지지 않았던 것이 간혹 지금에 와서 밝혀지기도 하고, 옛 시대에 합당하던 것이 지금 세상에는 어그러져 맞지 않기도 하며, 지금 숭상하는 것이 혹 이전보다 못하기도 하고, 지금 분명한 것이 혹 옛사람이 버린 것에서 나오기도 한다.” 의학의 분야에서도 예와 지금을 참작(參酌)하면 더 큰 발전이 있을 것임은 자명한 것입니다.


2.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상호보완하면 훌륭한 통합의학이 나올 수 있습니다.

2009년 7월 31일 “동의보감”이 의학 서적으로서는 사상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도 이곳에 등재된 의학관련 문서는 동의보감 이외에 노르웨이의 베르겐 한센병 기록문서와 인도의 타밀 의학 자료 필사본 모음 밖에 없습니다. 

동의보감은 19세기까지 유래가 없었던 예방 의학과 국가적으로 이뤄지는 공공 보건정책에 대한 관념을 세계 최초로 구축했으며, 일반 민중이 쉽게 사용가능한 의학지식을 편집한 세계 최초의 공중보건의서이며, 질병 치료와 관련해 정신적·심리적 측면을 강조하는 동양의학의 총체적 접근법을 담고 있어 단순한 기술적인 가치를 넘어 사회적·철학적 가치가 인정되었다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의 설명입니다. 하지만 이를 두고도 기록적 가치만으로 한정시키며 동의보감 중에 현대의 사고와 맞지 않는 특정 부분을 들어 폄훼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동의보감의 모든 내용을 교조적으로 떠받드는 우매함도 경계해야지만 근거없는 의도적 평가절하는 국익에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대한민국의 침술이 중의 침술과 비교해 기원으로 보나 정통성으로 보나 우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중국 침구(鍼灸·침과 뜸)를 이미 유네스코에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하였습니다. 또한 ‘동북공정(한민족의 역사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작업)’에 이어 우리 한의학을 ‘조의학(朝醫學·조선의 의학)’으로 폄하하고 중의학의 일부로 흡수하려는 ‘한의학 공정’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TCM(Traditional Chinese Medicine·전통중국의학)’이라는 용어를 아시아권 전통의학의 공식명칭으로 만들기 위해 국제표준화기구(ISO)에 집요한 물밑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국 인삼이 세계적으로 최고 품질로 꼽히지만, 인삼의 국제 표준어는 우리가 손 놓고 있는 사이 일본말인 ‘진셍(ginseng)’으로 정착되었습니다. 서양의학에는 없는 한의학의 독특한 질병관과 철학적 사고를 열린 마음으로 현대의학에 접목하면 얼마든지 의학의 외연은 넓어지고 더 큰 상생의 의학이 나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치졸한 직역직능간의 이기주의와 국가적 무관심속에 한의학의 주도권은 이미 중국에 넘어갈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3. 한의학의 전문가는 한의사입니다.

1900년의 의사규칙 제1조에 의사(醫師)는 “의학을 일상적으로 익혀 천지운기, 맥과 증후의 진찰, 오장육부와 신체의 외형, 크고 작은 처방, 약품의 덥고 찬 성질, 침과 뜸의 보법과 사법에 통달해 증상에 맞게 처방을 조제하는 자”라고 나와 있습니다. 오늘날의 한의사의 임무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일제의 민족의학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유구한 세월동안 민중의 치료를 담당했던 의사(오늘날의 한의사)는 의생(醫生)으로 신분이 떨어지고 그 자리가 서양의학을 배운 오늘날의 의사로 대체된 것입니다. 

또한 최근 서구로부터 불어오는 대체의학의 열풍에 편승하여 민간에서 침과 뜸의 전문가인양 자처하며 공인되지 않은 사설 자격증을 남발하며 자신들의 불법의료행위를 합리화시키려 일제의 잔재인 침사, 구사제도 부활을 기도하며, 선량한 국민들을 혹세무민하고 건강과 생명에 위해를 끼치는 사람들이 있어 안타깝습니다. 대한민국에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침과 뜸에 뛰어난 2만여 명의 한의사가 보완대체의학이 아닌 정통의학으로서 국가 보건의료체계 안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안전하게 시술하고 있습니다. 한의학과 서양의학은 대등한 입장에서 서로가 보완의학이 될 수 있으며, 한의학이 대체의학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서양의학만을 주체로 보는 시각에서 나온 말일 뿐입니다.


4. 한의학은 내 몸의 정기를 길러 병의 예방과 양생(養生)에 탁월합니다.

한의학에서는 병이 오기 전에 치료하는 의사를 최고로 쳤습니다. 요즘에는 이미 나타난 병에 대한 증상의 소실에 치중합니다. 과잉진료에 의한 항생제의 오남용으로 슈퍼박테리아가 출현하여 이제 사소한 질환으로도 생명을 잃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병에 대한 저항력의 약화로 감기만 걸려도 죽을 수 있는 시대가 올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종플루, SARS(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독감도 예방접종 없이 안 걸리는 사람이 훨씬 더 많고, 걸려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토피나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요인도 무수히 많아 이것을 다 찾아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대학병원에서 실시하는 스킨테스트 몇 가지는 넌센스입니다. 설령 알레르기 유발 물질 몇 가지를 찾아냈다고 해도 그것을 완전히 피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또한 누구나 그러한 요인에 노출되어 살고 있지만 걸리지 않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문제는 질병에 대한 저항력인 것입니다. 내 몸의 정기가 충실하면 외부의 나쁜 기운에 의하여 영향을 받지 않으며, 이미 병에 걸렸다는 것은 내 몸의 정기가 허하다는 징표입니다. 내 몸의 전반적인 면역력과 저항력을 키우는 것이 한의학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또한 개인의 면역력, 저항력은 결코 홍삼과 같은 특정한 하나의 약재, 음식, 건강기능 식품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정기신혈(精氣神血)과 음양 등 심신의 구성요소가 완벽한 형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5. You are what you eat!

선천적 건강은 수정 때 부모의 심신의 상태가 그대로 반영되지만 후천적인 것은 음식과 비위의 기능에 의하여 좌우됩니다. 따라서 어떠한 음식을 먹느냐는 그 사람의 심신의 건강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현대인은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건강에 대하여도 잘못된 정보가 너무 범람하여 오히려 몸을 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음식을 골고루 먹는 것이 영양이나 건강적인 측면 모두에서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음식 중에서 성분이나 영양학적 측면에서만 보면 좋지 않은 음식은 단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같은 음식을 먹고 나타나는 반응은 사람마다 각양각색입니다. 방귀, 구토, 설사, 변비, 체기(滯氣), 트림, 신물, 속쓰림, 알레르기, 두드러기 등은 모두 음식이 자신의 몸에 맞지 않아서 생기는 반응들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평소에 음식이나 차(茶), 건강기능 식품 등을 선택하는데 있어서는 자신의 체질과 몸의 상태를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건강을 위해 먹는 것들이 오히려 독(毒)으로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내 몸에서 나타나는 반응에 예의주시하여 자신에 맞는 것을 섭취하고 복용할 때 비로소 우리의 건강과 행복을 지킬 수 있습니다.


6. 내 몸의 주인은 바로 나의 마음입니다.

한의학에서는 오래전부터 “심자(心者) 신지주(身之主)”라 하여 “내 몸의 주인은 바로 나의 마음”이라 하였습니다. 조선시대의 유학자들이 심학(心學)을 기본으로 삼았다는 것은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또한 불교 화엄경의 중심사상에서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하여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을 강조합니다. 한의학에서 심(心)은 오장육부(五臟六腑)의 주인이며 온몸의 주재(主宰)로서 생의 근본이 되고 정신과 영혼이 머무는 곳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병에 걸려도 나을 수 있다는 자신감과 그로 인한 활력이 생기(生氣)를 북돋우는 것입니다. 나 자신도 포기한 몸은 아무리 훌륭한 의술과 명약(名藥)으로도 고칠 수 없는 것이 자명한 이치입니다. 맹자(孟子)에도 재앙(禍)와 복덕(福)은 모두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라 하였습니다. 

​한의학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병의 원인으로 칠정(七情)이라 하여 기쁨, 성냄, 근심, 생각, 슬픔, 공포, 놀람의 희노우사비공경(喜怒憂思悲恐驚)을 제시하였습니다. 또한 동무 이제마 선생께서 창안하신 사상의학에서는 희노애락(喜怒哀樂) 의 타고난 편차에 의하여 장부 기능의 차이가 발생하고, 그에 의하여 각자의 체질이 결정되며, 감정의 편중상태가 심하면 병에까지 이르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마음의 평(平), 중(中), 화(和)를 이루는 것이 심신의 건강을 유지하는 최선의 길입니다. 서양의학에서도 정신과 질환을 다루지만 뇌와 신경학적 부분에 국한하여 기질적이고 물질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므로 한의학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7. 한의학은 1:1 맞춤의학입니다.

대부분의 모든 의학은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의 소실을 목표로 치료행위를 하는 증치의학(證治醫學)입니다. 이 범주에서 가장 전형적인 것은 서양의학으로서 증상에 대응하는 대증치료(對症治療)에 주안점을 둡니다. 또한 같은 병의 같은 증상에는 누구에게나 같은 처방을 구사하므로 전병전방식(專病專方式)이라고 칭합니다. 물론 요즘 서양에서도 맞춤의학(Tailored Medicine)이라는 말이 부각되고 있습니다만 사실 한의학에서는 이미 수 천 년 동안 각자에게 적용되어 내려오고 있는 치료체계입니다. 

한의학에서는 같은 병이라도 사람에 따른 개체차이를 구별합니다. 증상을 판별하는 변증(辨證)이라는 독특한 체계를 적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체질한의학에서는 이에 더하여 각자가 타고난 고유의 체질에 따라서 병이 오게 되는 원인이 다르므로, 그 치료에 있어서도 체질적 취약점을 보강하는 것에 역점을 둡니다. 즉 증상의 소실과 그 예방에 개인의 체질적 특이성을 고려하는 것입니다. 감기를 예로 들면 서양의학에서는 증상을 위주로 하여 발열 근육통 인후통에는 해열 진통 소염제를, 코막힘에는 비충혈 완화제를, 콧물에는 항히스타민제를, 부비동염이나 중이염에는 항생제를 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한의학에서는 감기의 증상을 분석하여 유발원인을 세밀하게 가리게 됩니다. 그리고 감기의 회복 후에는 몸을 보(補)하여 정기를 북돋우는 치료를 합니다. 또한 체질 한의학에서는 체질별 특이성으로 인하여 각자에게 자주 오게 되는 감기의 유형을 파악하고 그 치료에 있어서도 체질별 장부(臟腑)의 취약점을 보강하고 체질별로 가장 적합한 약재를 선택하게 됩니다. 개체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에 맞게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한의학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8. 한의학이 타학문과 정합(整合)하면 학문의 폭이 넓어질 수 있습니다.

이종 학문간의, 특히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통섭(通涉, consilience)은 시대사적 대세가 되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통섭이라는 말 대신에 “학문간의 조정(調整)된 융합”이란 의미에서 정합(整合, coordinated fusion)이란 말을 더 선호합니다. 한의학은 여러 학문들이 녹아 있는 지식의 바다입니다. 의약학은 물론이고 철학, 심리학, 사회학, 천문학, 지리학, 생물학 등에서 그 활용가치는 막대합니다. 일부 미신적인 요소와 현시대에 맞지 않는 것도 조금 있지만 그것으로 전부를 폄훼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이제마 선생의 동의수세보원은 중국의 전통의학과 구별되는 우리만의 전유물로서 유학의 심학(心學) 부분을 의학과 접목한 전무후무한 시도로 평가되고 있으며 현재 환자의 치료는 물론 사회의 많은 부문에서 이용되고 있습니다. 물론 앞으로의 과제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사상체질은 요즘에 와서 이를 창안하신 동무 이제마 선생의 원래의 이론에서 벗어나 왜곡되어 전수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많습니다. 체질의 판정에 대하여도 각자가 주장하는 검증되지 못한 수많은 방법들이 난립하고 있고, 체질별 음식이나 약물에 대하여도 학파마다 각기 다른 주장으로 국민들에게 혼선을 가중하고 있는 면도 있지만 발전적인 과정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어쩔 수 없는 경과로 생각합니다. 

​이상과 같이 한의학의 현 위치와 장점에 대하여 몇 가지 살펴보았습니다. 모쪼록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저의 강의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한의학과 사상체질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 자신의 체질을 정확히 알아 그에 따른 식이와 섭생을 한다면 병이 있는 사람에게는 치유의 길이 열릴 것이고, 건강한 사람은 더욱 무병장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연관된 분야에서도 해당 학문의 발전에 큰 단초(端初)의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감히 자부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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