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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삼박사 칼럼

약주와 독주 사이[서울사랑.2010.12월호 기고] 이병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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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한 해의 마지막 달입니다. 이곳저곳이 각양각색의 송년 모임으로 들썩일 때이지요. 이러한 자리에서 빠질 수 없는 것으로는 단연 술이 제일로 꼽힙니다. 지는 해의 아쉬움을 달래며 세상은 온통 권주가(勸酒歌)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술은 득과 실의 양면성이 있어 적당하게 마시면 신이 주신 은혜로운 선물(은물, 恩物)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악마의 재앙으로까지 변할 수도 있으니 그야말로 두 얼굴의 야누스 격입니다. 어떻게 하면 술이 심신의 건강에 도움을 주는 하늘이 주신 감로(甘露)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동의보감>에 나와 있는 내용을 주로 하여 살펴봅시다.

술의 장단(長短)

술은 성질이 아주 뜨겁습니다. 일 년의 절기 중 가장 춥다는 대한(大寒)에는 바다까지 얼지만 오직 술은 얼지 않은 것으로 보아 온갖 사물 중에서 그 성질이 가장 열(熱)한 것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과하면 몸의 수분과 진액을 말려서 화열(火熱)을 조장합니다.

술의 맛은 쓰고, 달고, 맵고, 담담합니다. 쓴맛은 설사를 유발할 수 있고, 단맛은 비위의 기능을 도와줄 수 있으며, 매운 맛은 피부를 열어 땀을 나게 하고, 맛이 담백한 것은 소변을 잘 나오게 합니다. 술은 약 기운을 이끌어 전신의 체표를 통행시키고 인체의 가장 높은 곳에까지 이르도록 합니다. 

한의학에서는 약을 달일 때 술과 물을 섞거나, 약재를 술로 찌거나 볶는 방법을 활용하였는데 이것은 주로 약 기운을 운행시키고, 온갖 나쁘고 독한 기운을 없애며, 혈맥을 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술은 또한 위와 장의 기능을 좋게 하며, 피부를 윤기있게 하고, 근심을 없애주고, 평소에 울화(鬱火)가 쌓인 사람에게는 화를 나게 하여 풀어주며 속마음을 털어놓게도 합니다. 하지만 오래도록 마시면 정신을 손상하고 수명이 줄어들며, 몸이 말을 듣지 않고 정신이 혼미해지기도 하는데 이는 독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역대 의서들에는 술로서 성품과 정서를 도야(陶冶)할 수 있고, 풍한(風寒)을 몰아내어 혈맥을 통하게 하며, 나쁜 기운을 없애고, 약의 세력을 끌어올리는데 이만한 것이 없다고 그 장점을 기재하고 있습니다. 

동의보감의 음주금기(飮酒禁忌)

그렇다면 동의보감에서 제시하는 음주금기(飮酒禁忌)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첫째, 과음하지 말라. 주선(酒仙)으로까지 불리는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은 그의 시 장진주(將進酒)에서 ‘마시기로 했으면 한 자리에서 삼백 잔은 마셔야 한다(會須一飮三百杯)’고 읊었습니다. 하지만 동의보감에서는 석 잔을 넘으면 안 되고, 그보다 많이 마시면 오장(五臟)을 상하고 성품을 어지럽혀 발광하게 하니, 불가피하게 많이 마셨다면 빨리 토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얼굴이 하얀 사람은 순환혈액량의 부족을 반영하는 것이므로 술의 더운 성질이 혈액을 소모하여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으니 더욱 과음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흔히 취할 때 부리는 호기를 객기(客氣)라 합니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술 주(酒)”자를 보면 술에 의하여 사람의 성품이 선악(善惡)에 나아가고, 길흉(吉凶)을 만든다고 하였습니다. 주인 되는 나의 온전한 정신이 술이라는 객(客)에 의하여 점령되었으니 주객(主客)이 전도된 것입니다.

둘째, 취한 후에는 과식하지 말라. 취후 과식은 열에 의하여 피부병을 유발하고, 특히 면(밀가루)을 먹으면 기공(氣空)이 막힌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취하고 과식한 후에 잠을 자게 되면 과도한 위산이 역류하여 역류성 식도염에 취약해지고, 심하면 음식물이 기도를 막거나 흡인성 폐렴으로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셋째, 배부른 상태에서 술을 먹고 잠자리하지 말라. 수많은 한의학 서적에서 제시하는 양생법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입니다. 포식하면 기(氣)가 비위(脾胃)에 몰려 흩어지지 않고, 술의 기운과 음식의 기운이 서로 다투어 안에서 열이 발생하여 전신에 퍼지게 되면 얼굴이 검어지고 기침을 하며 장기(臟器)의 맥이 손상되어 수명이 단축된다고 하였습니다.

넷째, 술을 빨리 마시지 말라. 빨리 마시면 폐를 상하게 된다. 흔히 음식을 잘못 삼켜 기관(氣管) 쪽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 갑자기 기침처럼 뿜어 나오는 기운을 이를 때 “사레든다.”고 합니다. 술을 마실 때도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또한 체내에서 알코올의 분해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대취하여 인사불성이 될 것이 자명합니다. 술을 빨리 마시는 것은 수명을 재촉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다섯째, 술을 마시고 아직 깨지 않았을 때 목이 많이 마른다하여 차나 물을 많이 마시지 말라. 그리하면 신장으로 들어와서 머무르는 독수(毒水)가 되어 다리와 허리가 무겁고 방광에 통증이 생기고 몸이 붓고 당뇨가 생깁니다. 한의학에서 술을 깨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제시하는 것은 땀을 내거나 소변을 순조롭게 통하는 것입니다. 술이 깬 후에 목이 마를 때 목을 적시는 정도의 물을 마시는 것은 괜찮으나 술이 깨지 않았을 때의 과도한 물은 처리해야 할 쓰레기만 가두어 모으는 격입니다.

여섯째, 술을 마시고 찬바람을 쐬거나, 뛰거나 높은 곳을 넘지 말라. 목소리를 잃거나 구토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술은 습하고 열이 있어 몸에 열을 냅니다. 따라서 술을 먹고 나면 땀구멍이 열려 있는 상태입니다. 이 때 찬바람을 만나면 폐가 손상되어 기침을 하거나 목소리가 안 나옵니다. 또한 술을 마신 후 얼마 안되어 차를 타고 움직이거나 심한 운동을 하거나 많이 움직이면 더운 열기가 위로 몰려서 구토를 하게 됩니다.

기왕이면 자신의 체질에 맞는 약주(藥酒)를 드십시오!

전한(前漢)때 식화지(食貨志)에 술을 백약지장(百藥之長)이라 하였습니다. 실제로 예로부터 술은 약으로도 많이 쓰여 왔습니다. 하지만 같은 술도 사람에 따라서 얼마든지 약주(藥酒)도 독주(毒酒)도 될 수 있습니다. 

재료의 성질과 맛에 따라 체질별 적합성이 정해지는 것입니다. 성질이 급하고 기가 너무 위로 몰려 있는 사람들은 포도주, 머루주, 송엽주, 송절주, 산사춘이 좋습니다. 화열(火熱)이 치성하고 변비성향이 있는 사람들은 맥주, 복분자주, 구기자주, 지황주, 황련주가 어울립니다. 매실주, 고량주, 상심주(오디술), 창포주, 천문동주, 이화주(梨花酒), 국화주는 땀이 잘 안 나고 움직이기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합니다. 

소주, 양주, 인삼주, 밀주(蜜酒), 백세주는 소화흡수하는 기능이 떨어지고 몸이 찬 사람에게 가장 좋습니다. 자신에게 맞는 술을 적당한 양과 속도로 즐겁게 마신다면 삶의 활력소로서의 신의 은물을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술의 주인이 되느냐 노예가 되느냐는 그것을 운용하는 각자의 몫입니다. 모쪼록 한 해 건강하게 매조지 하시고, 새해에 힘찬 출발 하시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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